2022 이야기와 동물과 환상 > 환상학교 6강 [이상적인 호텔]

환상학교 6강 <이상적인 호텔>을 마치며

– 정혜윤 

2019년 그레타 툰베리가 등장하기 전까지 나는 몇가지 단어를 몰랐었다. 우선 ‘미래세대의 분노’라는 단어를 몰랐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미래세대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눈으로 확인했다. 그 사실을 알게되자 무안했다. 나도 어른으로서 미래세대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은 진심이었으나, 툰베리의 말을 듣자 공허해져버렸다. 

“플라이트 쉐임”(flight shame)이라는 단어도 처음 알았다. 그레타는 “어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해변에 가려고 비행기를 타고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가려고 비행기를 탄다” 고 비판하고 있었다. 어쩌면 좋을까? ‘해변’, ‘비행기’ 둘 다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단어였던 것이다.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비행기를 타고 해변에 간다’ 는 이 한 문장에 정말 많은 설레임, 추억이 담겨있다. 그러나 비행기가 내뿜는 탄소량을 적시하는 그레타의 말을 듣자 행복의 황금빛이 탈색되어 버렸다. 

‘내가 간 해변은 혹시 동물의 서식지를 많이 파괴한 곳 아니었을까?’ ‘그때 내가 배를 타고 놀던 맹그로브 숲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코코넛 나무 밑에 누워있던 깨끗한 해변은 자국민에게는 금지된 해변 아니었을까?’ 생각할수록 느낌이 좋지 않고 환상이 깨지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툰베리의 포효를 듣고 ‘그건 내 이야기인데…’ 라고 생각하자 새로운 자아가 태어났다. 그 자아는 ‘어머, 나 이제 비행기 타지 말아야하나봐.’ 라고 말했다. 

연달아 두 번째 자아도 태어났다. ‘그래도 여행은 좋은건데…’ 첫 번째 자아는 거칠고 기세등등했고 두 번째는 주눅들어있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이 두 자아의 혼란 속에 있다. 마침 코로나가 왔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여행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 다시 사로잡히려면 내겐 여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 사랑할 만한 이야기는 내 자리만을 고수해서 나온 적이 없다. 더구나 나는 이 세상이 주로 이야기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내 이야기로 삼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필수적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만남과 이동이 필요했다. 

나는 아름다움을 찾아내 보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다. 인간이 활동을 멈춘 영역에 동물들이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유일한 기쁨을 줬다. 여행을 할거면 과거와 다르게 여행해야한다는 생각도 강해졌다. 가능한 비행기를 타지 않기. 신공항 건설에 반대하기, 수입이 아닌 지역의 제철 음식 먹기. 또 뭘 해야할까? 비행기에 숟가락 가지고 타기? 텀블러는 필수? 대중교통 이용? 이것말고도 더 있을텐데.. 

그러던 어느날 나는 여행작가 세스 노터봄의 <유목민 호텔>이란 책에서 ‘이상적인 호텔’이란 단어를 발견했다. 어느 잡지사에서 ‘당신에게 가장 이상적인 호텔은?’이라는 질문을 던진 것. 노터봄은 1층 정원에 도마뱀붙이가 있고 3층에는 갈라시아 지방의 바람이 불어야한다고 했다. 이상적인 호텔은 실제로 존재하는 호텔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 가져다 붙이는 상상의 호텔이었다. 내게 이 호텔은 연장된 정체성의 일부로 보였다. 지구에서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지키려했는가를 빼고 자기 자신을 말할 수 있을까? 

난 환상학교를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꽤 많은 시간 이 호텔을 지었다 부쉈다 했다. 이 호텔은 소유할 필요가 없고 일층엔 물건을 파는 상점이 늘어선 아케이드같은 것도 없어야하고 처마 밑에 제비집이 있어야하고 저 멀리 구불구불한 길 너머로는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바다가 있어야하고 바다에는 가끔 돌고래가 솟구쳐 올라야하고 겨울에는 두루미가 날아야 하고.. 정원에는 향기로운 나무가 가득해서 우리의 감각은 한껏 열리고.. 우리의 얼굴과 눈은 보통때보다 백배 빛나고.. 그리고 옆방의 손님은? 손님은 지금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에 어느 정도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뭐라도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이상적인 호텔은 오늘은 이 모습이었다면 다음날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나를 자극했다. 아주 다양한 버전이 존재했고 그중에는 아주 환상적인 것도 있다. 인간이 곰이나 다람쥐처럼 동면을 취해서 적어도 겨울에는 어떤 악한 일도 하지 않도록 하는 동면실이 구비된 호텔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적인 호텔의 세부사항의 절대 다수는 지구에 사는동안 나에게 기쁨을 주었던 것들, 나로서는 절대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들의 목록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이런 놀이는 하는 동안 바깥세상은 더 차가와지고 있었다. 뜨거워지는 것은 기후, 산불로 훼손된 숲뿐이었다. 하나 더 있다면 적대감과 분노. 

이럴 때 환상적인 호텔을 짓고 꿈꿔보는 경험은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일단 나는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이 죽도록 힘든지, 무엇이 사라지고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내 호텔에는 모피코트를 입은 사람은 입장금지다. 빨대를 물고 들어올 수도 없다. 이상이 사라진 시대답게 우리가 좀처럼 던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당신은 어떤 세상을 보고 싶어요?’ 이상적인 호텔이 최종적으로 마주치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다른 세상에 대한 꿈. 왜냐하면 결국 우리는 호텔 밖으로 나갈테니까.

현실에서 우리는 아무 곳으로도 가지 않고 있다. 어디로도 가지 않으려고 하기에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있다. 숱하게 비행기를 타봤자 변하지 않으면 떠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살게 된다. 우리의 슬픔은 지금과는 다르게 사는 존재방식을 상상할 수 없어서, 어딘가 다른 곳을 상상할 수 없어서 생긴다. 그렇지 않다면 왜 폐쇄공포증 공황장애 질식 같은 단어들이 그렇게 힘을 얻겠는가? 

우리에게는 다른 꿈이 펼쳐지고 현실적인 힘을 얻어내는 다른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내 생각에 이제 가장 전복적인 여행은 지구에서 인간의 위치란 무엇인가 묻는 여행이 될 것이다. 하늘을 보라! 세상에 얼마나 많은 여행자들이 있던가? 지금은 제비가 날고 칼새가 여행중인 계절이다.